OSSI(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는 “쓸모 없는” 짓이다. 기존의 위성들이 우주신호를 끊임없이 감지하고, 대기를 관측하고, 방송신호를 받아 지구로 재전송하고, 지표면의 물체와의 거리를 인식해 물체의 좌표를 계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을 때, OSSI 가 쏘아올리려는 위성이 하겠다는 일은, LED 빛을 최대 밝기로 밝히겠다느니, 랜덤한 숫자를 전송해 이벤트를 하겠다느니 하는 장난 같은 이야기이다. 삼만오천원 짜리 티셔츠 만장으로 3억5천만을 모아 자금을 대겠다는 이야기는 이 장난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장난. 위성의 시작은 국가적이며, 우주적이고, 세계의 기원에 닿아있는 것이라고 방송되고, 보도되어졌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자신을 소개하는 송호준은 조선일보 사진기자의 선정적인 포즈 요구를 너그러이 응한다. 이는 그의 행동 자체가 창작활동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출처 : [Why] “혼자서 인공위성을 쏴올릴 계획입니다 왜, 못할 것 같습니까?” 기존의 위성이 갓 개발되어 우주로 연거푸 던져지던 시절, 국가 주도의 막대한 위성 개발 예산을 정당화해주던 것은 두개의 시대정신이었다. 냉전 시대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선제 방어, 우주기술과 과학탐구의 최전선에서의 인류의 탐구욕과 정복욕. 냉전 시대는 저물었다. 예컨대, 군사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GPS 는 민간에게 개방되어, 제한된 소수가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되던 시대를 지나, 기십만원의 GPS 수신기, 차량용 네비게이션, 혹은 GPS 센서가 내장된 이동전화를 사는 것만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이렇듯, 군사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위성의 기능 중 다수는 민간에게 개방되었고, 이제는 사람들이 위성 사진을 통해 다음날의 날씨를 안내받음으로 그것의 유용성을 당연시 여긴다. 위성이 당초 의도했던 군사적 목적은 생활편의적 목적으로 슬그머니 확장하여 자신의 필요성을 다수에게 수긍하게 한다. 탐구욕은 희미해졌다. 더이상 사람들은 거창한 앎을 추구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숙제를 풀겠다는 수조원 규모의 입자 가속기 프로젝트에 의회와 시민들은 난색을 표하기 시작했다. 1987년 44억달러의 건설비를 요구했던 ‘초전도 슈퍼콜라이더’(SSC·Superconducting Supercollider) 는 1993년 110억달러로 불어나, 결국 미 의회는 같은 해 프로젝트를 중지시킨다. “입자를 충돌시켜서 뭘 하자는 거지요?” 거대과학의 탐구에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으며, 국가는 그 예산으로 다른 일을, 즉 시민의 삶에 일상적이고 즉각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목적을 위해 봉사하던 위성이,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국가가 제시하는 방향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스스로 검열하게 하고, 초라하게 하던 위성이, 이제는 지극히 생활편의적인 목적으로 겸손해졌다. OSSI 는 유용하지 않은 위성을 제작함으로써 마침내 왜소해진 그 목적조차 잃게 하여, 사람들에게 위성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한번 던지게 만든다. 아무런 일 안하는 위성이 그저 내 머리 위에서 돌고 있을 뿐이라니. OSSI 는 개인에게로 축소된 인식의 지평에서 다시 시작하여 오히려 거꾸로 거대과학을 재정의한다.
“사실 우주 산업은 ‘지구의 기원 탐구’라는 역할 외에 그 자체가 판타지 산업 아닌가요? 금성이나 화성 탐사 같은 것도 사람들에게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인데, 나사(NASA) 같은 곳은 사람들의 그런 판타지를 상당히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다루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죠. 또 무지하게 정치적이라 러시아와 미국의 경쟁처럼 누가 먼저 달에 가고, 위성을 먼저 쏘았느냐가 중요했고요. 제가 인공위성 프로젝트와 관련해 내세우는 논거는 ‘왜 개인이 꿈꾸는 판타지가 과학보다 덜 중요하냐’는 것이죠.”
일간지에서 자”영업”자였던 그지만, 과학전문지와 디자인지에서는 자신이 뿌리를 둔 두 토대인 기술과 예술을 말할 수 있는 넉넉한 지면과 피사체의 자유를 허락받는다. 출처 [위] 대덕연구개발특구! 한국경제의 성장엔진 대덕넷 – 티셔츠 만장으로 ‘개인 인공위성’ 쏜다 [아래] magazyn.co.kr/ – 과학은 판타지다, 미디어아티스트 송호준 OSSI 는 위성으로부터 유용성이라는 잣대를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위성이 욕망의 추구라는 목적을 당초부터 갖고 있었다고 해석함으로써, 위성과 거대과학을, 진리와 보편을 다루는 모더니즘에서, 내재된 취사선택과 다양한 관점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자리로 데려온다. 이전에 위성이 욕망하는 것이 국가적 욕망의 대리 실현이었다면, 단지 스케일의 차이일 뿐, 비용이 낮아지고 방법만 공개된다면, 개인의 욕망을 위성의 욕망으로 확장하기에 더이상의 장애물이 없다는 것이다. 김현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통해, 가장 가까운 어머니마저 자신이 하는 일의 “유용성“을 확인하려 할 때, 문학의 “비유용성”을 되뇌인다. 문학은 유용하지 않다고, 맞다고, 바로 그러하기에,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OSSI 프로젝트는 위성의 비유용성을 드러내어 암묵적으로 위성의 유용성을 강제해왔던 국가주의를 폭로하는 동시에, 위성의 거대한 욕망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대체하여 드러낸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사회고발적이거나, 자기표현 활동을 문학이라 부른다. p.s. 이 글은 강명석의 유세윤│유세윤은 예술가다 – 텐아시아 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합니다. 본질을 기억하며 예술가를 발견한 그의 안목에 건배하며, 이를 스트레이트하게 폭로한 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